배구이야기가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이번 시간에서는 현역시절 "코트의 신사"로 명성을 날린 배구스타 하종화가
1995년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국가대표로 재발탁된 특별한 사연들을 배구이야기의 특별기획에서 만나봅니다.
하종화는 195cm의 큰 키를 갖춘 윙스파이커의 레프트공격수로 스파이크높이 340cm, 블로킹 높이 338cm, 서전트점프
75cm를 갖춘 주공격수로 상무 소속 시절 당시 1995년에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했습니다. 하종화가
현역시절인 1995년 당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에 재발탁된 이유에 대해 배구팬들이 많이 아는 만큼 그가 1995년에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에 재발탁된 과정들이 많습니다.
그는 1987년 8월에 바레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남자배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한국 남자배구가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중남미의 강호 쿠바에 3대 2로 역전승을 거두고 대한민국 청소년 남자배구대표팀의
세계청소년남자배구선수권대회 첫 우승에 일조하여 한국 남자배구 역대 최초 세계 배구에 기념비를 세운 경력이
많습니다. 하종화는 1989년부터 국가대표로 발탁하여 1989년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남자배구를 시작으로 월드리그,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 92바르셀로나올림픽, 월드컵, 96애틀란타올림픽,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주요 국제무대에서
부동의 레프트공격수로 활약하고 1991년 12월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에 입단하여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에서 왼쪽 공격수로 활약했습니다. 하종화는 1992년 여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92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배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92바르셀로나올림픽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1991년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남자배구 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월드컵 남자배구
역대 최고성적인 5위를 견인하고 1993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 두번째 우승에 일조하여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본선 진출을
견인하게 됩니다. 동년 하반기에 일본에서 열린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남자배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최하위인 6위에 그치는 아쉬움도 많았지만 하종화는 1994년 가을에 그리스에서 열린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 결승라운드 8강진입을 견인하고 1994년 10월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동메달 수상에 일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종화는 갑자기 병역비리에 휘말리게 되고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과 상무 남자배구단의 심각한
갈등이 계속되면서 1994년 11월에 스스로 군입대를 결정하고 1995년 2월에 상무(국군체육부대)의 부름을 받아
상무 남자배구단에서 왼쪽 공격수로 활약하게 됩니다. 그러나 1995년 2월21일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만능
센터로 활약하고 있었던 故 김병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팀 전력에 큰 손실이 발생하여
비상이 걸리게 되자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상무 남자배구단을 호출하여 대한민국배구협회와 상무가 긴급회의를 진행한
끝에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큰 손실을 막기 위해 하종화를 국가대표에 재발탁시키는 조치를 진행하게 됩니다.
상무에서 활약중인 하종화는 故 김병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비상이 걸린 대한민국배구협회와 상무의 배려를 통해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에 재발탁되는 우연한 행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한민국배구협회와 상무의 배려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에 재발탁된 하종화는 상무 소속 시절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하여 제6회 95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아시아 국가 사상 최초로 가장 먼저 월드리그 결승라운드 본선에 진출하는 대기록을 견인합니다. 당시 한국 남자배구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처음으로 월드리그 결승라운드 6강에 진입했던 제6회 95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
결승라운드는 남미 지역인 브라질의 벨로 호리존테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동시에 열렸는데 95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 결승라운드의 본선에서 하종화와 김세진이 분전했던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은 월드리그 역대
최고성적인 95월드리그 6위로 세계 배구에 기념비를 세우게 됩니다. 최종옥 감독이 지휘했던 한국 남자배구는
1995년 7월에 종료된 제6회 95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 결승라운드 본선에서 6위를 차지하여 팀 전력 극대화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브라질 언론들의 많은 극찬을 받게 됩니다. 하종화는 1995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하고 1995년 하반기에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남자배구
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합니다. 하종화는 1996년 여름에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96애틀란타올림픽 남자배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96애틀란타올림픽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맞이하게 되고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에서 부동의 레프트공격수로 활약했던 하종화는 96애틀란타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종화는 한국배구슈퍼리그가 1997년 봄에 종료된 이후 상무에서
전역하여 원 소속팀인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현대자동차 남자배구단에서 왼쪽 공격수로 활약했던 하종화는 2000년 11월 서른하나의 젊은 나이에 공식 은퇴를
결정하고 배구 지도자로 제2의 배구 인생을 시작하여 현대자동차 남자배구단의 수석코치로 근무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이 현대자동차 남자배구단을 인수하여 2001년 7월1일부터 현대캐피탈 남자배구단이 출범된 이후 코치로
근무했던 하종화 코치는 2003년 봄에 종료된 한국배구슈퍼리그를 마지막으로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시로 돌아가게
됩니다. 8년 후 하종화는 현대캐피탈 배구단의 부름을 받고 남자프로배구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2011~2012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정규리그에서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견인하는 성과를 이루고 2012~2013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정규리그에서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으 정규리그
2위와 플레이오프 진출을 견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당시 정규리그 3위팀인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가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결국
2013년 4월 하종화 감독을 조기 경질하는 조치를 내리게 됩니다. 결국 하종화는 다시 그의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시로
돌아가다가 5년 후 한국배구연맹의 부름을 받고 한국배구연맹의 경기감독관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은 배구 지도자가 되었지만 하종화는 배구 지도자에서 한국배구연맹 경기감독관으로 발령을 받아 제3의 배구
인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경기감독으로 프로배구 경기를 매 시간마다 판독하는 그의 활약은 프로배구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현역시절 "코트의 신사"로 활약했던 그의 배구 인생 3막은 배구팬들에게 어떤 공감을 줄 수 있는지
기대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한국배구연맹 경기감독관으로 제3의 배구 인생을 시작했던 그의 활약은
V리그에서 계속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배구이야기가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코트의 신사" 하종화가 1995년 당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재발탁된 특별한 사연에 대해 아시는 네티즌
여러분들이 있으면 댓글 많이 달아주시길 부탁드리며, 누리꾼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배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별기획] 1990년대 국가대표 부동의 장신세터 진창욱의 아쉬움이 많았던 그의 장신세터 시대 (0) | 2020.08.21 |
---|---|
[특별기획] "코트의 장동건" 하경민이 가장 먼저 지배하는 센터의 품격 (0) | 2020.08.20 |
[특별기획] "코트의 임꺽정" 임도헌이 지배하는 타점 높은 공격력과 백어택의 품격 (0) | 2020.08.18 |
[특별기획] 부동의 센터 김상우가 지배하는 배구 지도자의 진취적인 지도력과 지도자의 품격 (0) | 2020.07.31 |
[특별기획] 부동의 세터에서 지도자로 변신한 최태웅 감독이 지배하는 토스의 품격 (0) | 2020.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