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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이야기

[특별기획] 1990년대 국가대표 부동의 장신세터 진창욱의 아쉬움이 많았던 그의 장신세터 시대

배구이야기가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이번 시간에서는 1990년대 국가대표 부동의 장신세터로 맹활약하여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장신세터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진창욱의 아쉬움이 많았던 그의 장신세터 시대의 과정들을 

배구이야기의 특별기획으로 만나봅니다. 

 

1990년대 국가대표 부동의 장신세터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진창욱은 195cm의 장신 세터로 스파이크높이 335cm, 

블로킹 높이 333cm, 서전트점프 70cm를 갖춘 만큼 타점 높은 고무공 토스로 과거 시절부터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의 공격을 지휘했습니다. 경북사대부고 1학년에 재학중인 1984년부터 배구를 시작하여 경북사대부고, 

성균관대학교를 거쳐 1993년 12월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에 입단했던 진창욱은 1994년 봄에 종료된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의 우승을 견인하고 1995년 3월에 종료된 한국배구슈퍼리그 

대회에서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의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9월 진창욱이 갑작스럽게 

은퇴하면서 그의 장신세터 시대가 아쉽게도 막을 내렸지만 지금도 1990년대 국가대표 부동의 장신세터로 활약했던 

진창욱의 맹활약은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장신세터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회사원이 되었지만 

성균관대학교 시절부터 한국 남자배구의 장신세터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진창욱은 현대캐피탈이 현대자동차

남자배구단을 인수하여 2001년 7월1일부터 현대캐피탈 남자배구단이 출범된 이후 2001년 9월 갑작스럽게 은퇴하여

배구팬들의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서울에 있는 현대캐피탈 상계지점에 가면 배구선수에서 회사원으로 제2의 

배구 인생을 시작했던 배구선수 출신 회사원 진창욱이 근무했던 흔적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진창욱은 성균관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1991년부터 국가대표로 발탁하여 1991년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준우승에 일조하여 월드컵 남자배구 본선 진출에 기여하고 1991년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남자배구 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월드컵 남자배구 역대 최고 성적인 5위를 견인하는 최고의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진창욱은 1992년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92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배구 예선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맞이하지만 1993년 여름 미국 버팔로에서 열린 버팔로 하계 

유니버시아드 올림픽 남자배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동메달 수상을 견인하고 1993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두번째 우승과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남자배구 본선 

진출을 견인하게 됩니다. 그는 1993년 하반기에 일본에서 열린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남자배구 경기에서 월드세터 

신영철과 함께 주전으로 출전하여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아쉽게도 최하위인 6위에 그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1993년 12월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에 입단하여 1994년 봄에 종료된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의 우승에 일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창욱은 1995년 3월에 종료된 한국배구슈퍼리그 대회에서 주전으로 

출전하여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의 한국배구슈퍼리그 첫 우승을 견인하는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진창욱이 몸을 담고 있는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은 1995년 2월 만능 센터 故 김병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故 김병선을 잃은 이후 현대자동차써비스 선수단이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에 출전했으며, 한국배구슈퍼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은 故 김병선과 함께하지 못했던 마음 아픈 

우승컵을 안고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슬픔의 눈물을 흘린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은 1996년 2월에

종료된 한국배구슈퍼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고려증권 남자배구단에게 우승을 내주고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진창욱은 1995년 국가대표로 발탁하여 제6회 95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주전

세터로 출전하여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아시아 국가 사상 최초로 가장 먼저 월드리그 결승라운드 6강에 진출하는 

최고 성적을 달성하게 됩니다. 한국 남자배구가 처음으로 월드리그 결승라운드 6강에 진출했던 95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 결승라운드 본선은 브라질의 벨로 호리존테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는데 한국 남자배구가 

월드리그 역대 최고 성적인 95월드리그 6위라는 최고 성적을 달성하여 세계 배구에 기념비를 세우는 대단한 활약을 

하게 됩니다. 1995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진창욱은 1995년 하반기에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남자배구 대회에서 월드세터 신영철과 함께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주전 세터로 출전합니다. 진창욱은 

1995년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남자배구 대회를 마지막으로 1996년 1월에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됩니다. 

 

진창욱이 몸을 담았던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은 1996년 2월에 종료된 한국배구슈퍼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고려증권 남자배구단에게 우승을 내주고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하는 아쉬움을 맞이하게 되고 진창욱은 1996년 

2월에 종료된 한국배구슈퍼리그를 마지막으로 1996년 3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에 입대하여 소집해제가 끝나는 1998년 

5월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제대하자마자 원 소속팀인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에 복귀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이 1999년 4월부터 현대자동차 남자배구단으로 승격되다가 현대캐피탈이 현대자동차 

남자배구단을 인수하여 2001년 7월1일부터 현대캐피탈 남자배구단이 본격적으로 출범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진창욱은 2001년 9월 갑작스럽게 은퇴하여 배구팬들의 아쉬움 속에 17년 넘게 생활했던 배구 인생을 종료하고 

배구코트를 떠나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현대캐피탈 상계지점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현대캐피탈 

상계지점은 배구스타 출신 회사원 진창욱이 2년동안 근무했던 곳으로 유명한 만큼 현대캐피탈 상계지점에 가면 

배구선수 출신 회사원 진창욱이 이곳에서 2년동안 근무했던 흔적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회사원으로 제2의 배구

인생을 시작했던 진창욱은 2003년 9월 경상남도 창원시로 건너가 창원에 있는 현대캐피탈 마산채권센터에서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진창욱이 과거 시절부터 지배했던 한국 남자배구의 장신세터 시대는 짧았지만 한국 남자배구 장신세터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진창욱은 한국 남자배구 장신세터 시대의 대표적인 배구스타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회사원으로 제2의 

배구 인생을 시작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진창욱이 지도자로 배구코트에 다시 컴백할 수 있기를 기다리는 만큼

배구팬들의 아쉬움이 많았던 그가 지배했던 한국 남자배구 장신세터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배구이야기가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만 마무리하겠습니다. 

 

1990년대 국가대표 부동의 장신세터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배구스타 진창욱에 대해 아시는 네티즌 여러분들이 

있으면 댓글 많이 달아주시길 부탁드리며, 누리꾼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