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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이야기

[특별기획] 월드센터 방신봉이 지배하는 블로킹 높이와 베테랑 센터가 보여줄 수 있는 리더십

배구이야기가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이번 시간에서는 현역시절 거미손과 황금 방패로 블로킹 높이를 주력으로 발휘했던 

월드센터 방신봉이 지배하는 블로킹 높이와 베테랑 센터가 보여줄 수 있는 리더십을 배구이야기의 특별기획에서

만나봅니다. 

 

대전 유성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1985년부터 배구를 시작했던 방신봉은 대전 중앙중고등학교와 홍익대학교를

거쳐 1997년 12월에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에 입단한 이후 1999년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남자배구 대회에서 

한국 남자배구 선수 최초로 블로킹 부문 1위를 차지하여 베스트 블로커상을 수상받았습니다. 1999년 월드컵 남자배구 

대회에서 베스트 블로커상울 수상받은 방신봉은 한국배구와 세계를 넘어 월드센터로 발돋움하여 2000년 가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시드니올림픽 남자배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미들블로커로 활약했습니다. 

 

방신봉은 1995년 7월 국가대표로 발탁하여 1995년 여름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올림픽 남자배구 

결승전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두번째 하계 유니버시아드 올림픽 우승과 금메달 획득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병무청으로부터 병역을 면제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방신봉은 1996년 여름에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96애틀란타올림픽 남자배구 예선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96애틀란타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루지 못하는 

아쉬움을 맞이하게 되고 1997년 12월에 현대자동차써비스 남자배구단에 입단하여 1998년 겨울 태국 방콕에서 열린 

방콕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결승전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만리장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국에게 1대 3으로 

분패하여 은메달 수상에 그치는 아쉬움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방신봉은 1999년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남자배구 

대회에서 한국 남자배구가 역대 세번째 월드컵 남자배구 최고 성적인 7위를 기록하여 블로커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고 방신봉은 한국 남자배구 선수 최초로 베스트 블로커상을 수상받아 한국배구와 세계를 넘어 월드센터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방신봉은 1999년 12월에 시드니올림픽 남자배구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시드니올림픽 남자배구 본선 진출과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남자배구 5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견인하고 2000년 가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시드니올림픽 남자배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국가대표 주전 센터로 출전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은 시드니올림픽 남자배구 경기에서 본선 진출을 

이루지 못하고 예선탈락의 아쉬움을 맞이하게 됩니다. 

 

방신봉은 2001년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열린 창원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세번째 

우승과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본선 진출을 견인하고 동년 하반기에 일본에서 열린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남자배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을 4위로 견인하는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방신봉은 2002년 가을 부산광역시에서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결승전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중동의 강호 이란을 3대 0으로 완파하고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우승과 금메달 획득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에서 부동의 센터로 

활약한 뒤 부산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2002년 12월에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됩니다. 

 

현대캐피탈 남자배구단에서 센터로 활약했던 방신봉은 2004년 봄에 종료된 V투어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경기에서 

현대캐피탈 남자배구단의 준우승에 일조하고 프로배구가 출범된 이후 프로배구 첫 시즌인 2005년 프로배구

정규리그에서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견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의 아쉬움을 맞이하게 되고 현대캐피탈 배구단에서 

몸을 담았던 방신봉은 2005년 8월1일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구미 LG화재 그레이터스 배구단으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LG화재 배구단이 LIG손해보험 배구단으로 출범된 이후 방신봉은 2005~2006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정규리그에서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일조하게 되고 2006~2007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정규리그에서

LIG손해보험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아쉬움을 잊고 2007년 V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세레모니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8년 7월 방신봉은 잠시 프로배구 코트를 떠나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수원실내체육관에서 

1년동안 관리직의 코트매니저로 근무하다가 수원 KEPCO45 배구단의 감독으로 취임한 강만수 감독의 제의를 받고 

현역 복귀를 선언하여 프로배구 코트로 다시 복귀하게 됩니다. 방신봉이 몸을 담고 있는 팀인 수원 KEPCO45 배구단은 

2011~2012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정규리그에서 정규리그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최고 성적을 달성하지만 

2012년 10월부터 KEPCO 배구단의 명칭도 수원 KEPCO 빅스톰 배구단으로 변경됩니다. 하지만 2012~2013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정규리그에서 수원 KEPCO 빅스톰 배구단은 25연패라는 최다 연패 타이 기록을 세우며 최하위인 

6위에 그치게 되고 결국 수원 KEPCO 빅스톰 배구단은 시즌 도중 성적부진과 경험 부족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신춘삼 

감독을 경질하는 조치를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KEPCO 배구단은 2013년 10월부터 지금의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배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방신봉은 2015년 4월에 종료된 2014~2015시즌 프로배구 V리그 정규리그에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을 3위로 

견인하여 한국전력 빅스톰 배구단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견인하고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배구단의 역대 최고 성적인 

최종 3위를 견인하는 큰 역할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6년 가을에 열린 청주 KOVO컵 프로배구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배구단의 사상 첫 KOVO컵 프로배구대회 우승에 일조했던 방신봉은 2017년 4월에 

종료된 2016~2017시즌 프로배구 남자부 정규리그에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배구단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견인하는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그렇지만 방신봉은 2017년 4월 32년 넘게 정들었던 배구인생을 종료하고 마흔둘의 젊은 나이에 

공식 은퇴를 결정하여 정든 배구코트를 떠나게 됩니다. 

 

부인과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 방신봉은 현역시절 국가대표 최고의 월드 센터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에서 블로킹 높이를 담당할 정도로 황금 방패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cm의 큰 키를 가진 

블로킹 높이는 물론 스파이크높이 335cm, 블로킹 높이 323cm, 서전트점프 60cm를 갖춘 만큼 그의 블로킹 실력은 

국제배구 무대에서 주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세계 최고의 블로커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지만 언젠가는 방신봉이 지도자로 제2의 배구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배구이야기가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월드센터 방신봉이 지배하는 블로킹 높이와 베테랑 센터가 보여줄 수 있는 리더십에 대해 아시는 네티즌 여러분들이 

있으면 댓글 많이 달아주시길 부탁드리며, 누리꾼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