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구이야기

[특별기획] 배구선수 출신 대학교 교수 장윤창이 가장 먼저 지배할 수 있는 스파이크서브의 기술

배구이야기가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이번 시간에서는 과거 시절에 활약했던 올드 배구스타로 대한민국 남자배구 선수 

최초로 스파이크서브를 구사했던 배구선수 출신 대학교 교수 장윤창이 가장 먼저 지배할 수 있는 스파이크서브의 

기술을 배구이야기의 특별기획에서 만나봅니다. 

 

경기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로 근무하는 배구스타 장윤창은 현역시절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왼손잡이 

라이트공격수로 활약하고 레프트공격수와 센터 포지션까지 동시에 소화하여 과거 시절 유니버셜 포지션의 

한국 남자배구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장윤창이 과거 시절에 사용했던 포지션인 유니버셜은 한마디로 "포지션 

파괴"라고 유명할 만큼 리베로와 세터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만능 공격수로 세계 

배구스타 대부분이 유니버셜 포지션으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폴란드 남자배구대표팀에서 만능 공격수로 

활약하는 바토즈 큐렉도 유니버셜 포지션으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국제배구 대회에서 큰 공헌을 이루고 있는 세계의 

모든 배구 스타들이 지금까지 유니버셜 포지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윤창은 대한민국 배구에서 국내 최초 

스파이크서브를 시도하여 돌고래 서브로 세계 배구의 유행을 이어가고 그의 대단한 스파이크서브는 세계 배구의 

가장 큰 유행을 이끌었습니다. 현역시절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스파이크서브를 지배했던 그는 처음 배구할 때 

세터로 활약하다가 키가 크면서 라이트로 전향한 이후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하여 윙스파이커와 미들블로커를 

동시에 소화하면서 유니버셜 포지션으로 맹활약하고 국제 배구의 대표적인 배구스타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스파이크서브는 동급 최강 120마력 이상의 매우 빠른 속력으로 상대 코트로 날아가 상대 팀의 수비를

무너뜨리는 스파이크서브의 기술을 발휘하고 한국 최초로 스파이크서브를 시작한 선수로 유명할 만큼 그의 대단한

서브는 터보 인터쿨러로 움직이는 스파이크서브의 기술을 한국 배구의 중심으로 형간전환했습니다. 장윤창은

인창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1978년 가을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4강진출에 큰 공헌을 이루고 동년 하반기에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하계 아시안게임 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첫 우승과 금메달 획득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병무청으로부터 

병역면제를 받는 큰 선물을 얻게 됩니다. 장윤창이 활약했던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은 1978년 가을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초 4강진입의 대기록을 달성하여 이탈리아 언론들의 많은 극찬을 받았으며, 

1978년 가을에 열린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모든 선수가 포지션 부문을 비롯한 

모든 부문에서 베스트6에 선정되는 큰 공헌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한국 남자배구가 1978년 가을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4위라는 최고 성적의 대기록을 달성할 때 이 대회에서 큰 공헌을 이룬 한국 선수 

대다수의 주축 멤버들이 1978년 가을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4강진입 달성에 대한 큰 공헌을 이룬 공로를 인정받아 줄줄이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는 대기록을 남기게 되고 

주축 선수 중 국가대표 부동의 컴퓨터 세터로 활약했던 김호철도 1981년과 1987년 두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여 세계 배구의 메이저리그로 유명한 유럽의 배구종가국 이탈리아 리그에서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978년 가을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4강진입의 대기록을 달성하여 역대 최고 

성적으로 세계 배구에 기념비를 세운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이 대회에서 4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달성한 

반면 중남미의 강호 쿠바는 최종 3위로 동메달 수상을, 이 대회에서 개최국으로 아쉽게도 준우승을 차지한 조직국인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는 최종 2위와 함께 준우승으로 은메달 수상을, 소련 시절 동유럽의 강호로 유명한 러시아가 

이 대회에서 우승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하여 한국, 쿠바, 이탈리아, 러시아가 1978년 가을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국제 배구 역대 사상 최고 성적의 기념비를 세우게 됩니다.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에서 국가대표 부동의 라이트공격수로 활약했던 장윤창은 1979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올림픽 남자배구 결승전에서 중남미의 강호 쿠바를 완파하고 사상 처음으로 하계 유니버시아드 

남자배구 첫 우승의 최고 성적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견인하고 1982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하계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대회에서 동메달 수상을, 1982년 하반기에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역대 두번째 최고 성적인 8강진입의 대기록을 달성하여 최종 8위라는 최고 성적으로 세계 배구에 

새로운 기념비를 세우는 큰 공헌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3년 봄에 고려증권 남자배구단이 창단을 

시작하면서 고려증권 남자배구단은 경기대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만능 공격수 장윤창을 영입하게 되고 장윤창이 

만능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팀은 고려증권 남자배구단은 1984년 제1회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최고 성적을 달성하는 것과 동시에 장윤창이 제1회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베스트6로 선정되고 

MVP까지 동시에 차지하는 큰 영광을 얻게 됩니다. 고려증권 남자배구단에서 간판 스타로 활약하는 장윤창은 

198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역대 최고 성적인 

5위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여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이 미국 LA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대회에서 8강진입의 

대기록을 달성하는 것과 동시에 하계 올림픽 남자배구 경기에서 세계 배구에 기념비를 세우게 되는 대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장윤창은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에서 유니버셜 포지션으로 활약하여 1986년 가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하계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결승진출 공헌과 함께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86서울아시안게임 준우승 공헌은 물론 은메달 수상까지 획득하여 서울특별시를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 교류 도시로 도약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1986년 가을에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86서울아시안게임 

남자배구 결승전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은 중국에게 1대 3으로 역전패하여 아쉬운 준우승과 함께 은메달을 

수상하여 만리장성의 벽을 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장윤창이 활약하고 있는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은 1988년 가을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남자배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역대 최저 성적인 11위에 그치는 수모를 당하게 되고 1988년 가을에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88서울올림픽 남자배구 

경기에서 북중미의 강호 미국이 남미의 강호 브라질을 완파하고 88서울올림픽 남자배구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장윤창은 지난 1990년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고려증권 남자배구단의 우승을 차지하는 큰 

공헌을 이루고 1993년 제10회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고려증권 남자배구단의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이루었으며, 

1994년 제11회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고려증권 남자배구단의 준우승을 견인하는 최고의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장윤창은 1994년 5월에 서른넷의 젊은 나이에 현역 은퇴를 결정하고 배구 지도자로 제2의 배구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현역 은퇴 이후 장윤창은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에 있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다가 경기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로 발령을 받아 오늘에 이르지만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배구행정가로 제3의 배구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장윤창은 대한민국 스포츠 국가대표선수회에서 회장직을 수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장윤창 경기대학교 체육학과 교수가 먼저 감내해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는 

배구행정가로 근무하는 규정상 매년 명절이 되면 그의 고향인 충청남도 논산시에 갔다올 수 없기 때문에 배구 업무 

일정상 명절 기간에는 충청남도 논산시에 갔다올 수 없는 아쉬움도 감내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에서 유니버셜 포지션으로 활약했던 장윤창이 가장 먼저 지배할 수 있는 스파이크서브의 기술은 

모든 대한민국 남자배구대표팀 선수들에게 살아있는 교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배구이야기가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만 마무리하겠습니다. 

 

배구선수 출신 대학교 교수 장윤창이 가장 먼저 지배할 수 있는 스파이크서브의 기술에 대해 아시는 네티즌 여러분들이 

있으면 댓글 많이 달아주시길 부탁드리며, 누리꾼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